[1부] 처음 달라진 기운
처음 달라진 기운이 감도는 어느 저녁
그날 저녁, 해가 저물고 집 안은 점차 어두워졌다.
창문 너머로 스며드는 노을빛은 따스했지만, 그 빛은 마치 우리 사이에 스며든 차가운 기운을 더 선명하게 비추는 듯했다.
부엌 한켠에서 설거지를 하며 나는 무심코 손가락 끝으로 접시를 만졌지만, 그 차가운 감촉조차 이제는 낯설게 느껴졌다.
마음 한쪽이 서서히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예전 같으면 아무렇지 않게 넘겼을 가벼운 말투 하나, 사소한 표정 하나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내가 있었다.
나는 그 변화가 무엇인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처음 달라진 기운이 무언가가 끝나가고 있음을 조용히 알리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도 모르게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는, 입술을 꽉 다물었다.
마음속에 묻어두고 싶던 질문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우리는 왜 이렇게 된 걸까?
아직 사랑하는 걸까?
아니면 이미 멀어진 걸까?’
그가 거실 소파에 앉아 휴대폰을 바라보는 모습은 늘 보던 풍경이었지만, 오늘은 달랐다.
눈빛은 어딘가 멀리 떠나 있었고, 마음은 내게 닫힌 듯했다.
나는 그에게 말을 걸고 싶었지만, 내 목소리는 목구멍에서 멈추었다.
그가 나를 향해 돌아보지도 않는 것이, 그의 차가운 무심함이 더 깊은 상처로 다가왔다.
균열이 깊어지는 순간, 침묵이 흐르는 식탁
식탁에 마주 앉았을 때,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지 않았다.
예전 같으면 작은 일에도 웃음꽃을 피우고 서로의 말을 경청하던 자리였다.
하지만 그날 저녁, 그 자리는 무거운 침묵과 함께 먹먹함으로 가득했다.
나는 밥알 하나하나 씹으며 입안에서 퍼지는 맛보다, 마음속에서 씹히는 쓸쓸함과 허전함에 더 집중하고 있었다.
내가 그의 눈을 마주치려 애쓰는 동안, 그는 천장을 바라보거나 밥그릇만 응시했다.
내가 말을 꺼내려 할 때마다 심장이 쿵쿵 뛰었지만, 입술은 굳게 닫혀 말은 나오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그가 원하는 답은 뭘까?’
내 안의 불안과 혼란이 뒤섞여,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의 얼굴에 드리운 무표정은 나를 더욱 아프게 했다.
그 표정은 감정을 숨기려 애쓰는 방어막 같았다.
내가 그 방어막을 깨뜨리고 싶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 벽이 무너지면 모든 것이 끝나버릴까 두려웠다.
그 침묵은 무겁게, 우리의 마음을 천천히 분리시키고 있었다.
찬바람처럼 스며드는 균열의 시작
밤이 깊어지고, 창문 틈으로 찬바람이 들어왔다.
나는 그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며, 우리 사이에 드리운 어둠과 침묵을 생각했다.
처음에는 그냥 기분 탓이라 믿으려 했다.
누구나 가끔은 기분이 우울하고 감정이 흔들릴 때가 있으니까.
하지만 그 바람은 단순한 기분이 아니었다.
그 바람은 우리 사이에 생긴 균열이 점점 벌어지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나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싸우고 있었다.
‘이대로 무너지면 어떡하지?’
‘우리가 함께한 시간들은 모두 의미가 없었던 걸까?’
‘나는 그를 아직도 사랑하는 걸까?’
그러나 그 질문들은 대답을 얻지 못한 채 내 가슴 속에서 무겁게 울렸다.
서로가 서로에게 닿으려 애썼지만, 말하지 못한 감정들은 점점 쌓여만 갔다.
그 찬바람은 침묵을 더 깊게 만들었고, 결국 우리는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았다.
나는 그 순간, 우리가 얼마나 멀리 와버렸는지 절절히 느꼈다.
이 균열은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무너져 내리는 시간 속에서
그날 이후, 집 안은 더 이상 따뜻하지 않았다.
공기 중에 감도는 차가운 기운은 마치 우리의 마음을 그대로 닮은 듯했다.
우리가 함께 쌓아 올렸던 시간과 추억들은 균열 사이로 스며들어 사라졌고,
서로의 눈빛 속에서 반짝이던 사랑은 점점 희미해져 갔다.
나는 가끔 혼자 있는 밤에 무너져 내리는 마음을 붙잡으려 애썼다.
아무리 애를 써도, 그 마음은 흩어지고, 이별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웠다.
그러나 그 어둠 속에서도 나는 희미한 빛을 찾으려 했다.
그 빛은 무너진 틈새 사이로 스며드는 작은 희망이었다.
그 깨진 벽이 언젠가는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들고, 새로운 시작을 알릴 것이라는 믿음이었다.